사순절 제 33일 - 40일

Author
GDEW All Nations Church
Date
2022-04-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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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3일  누가복음 23장 26절, 시편 51편

[눅]23: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처음으로 지고 따라갔던 사람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습니다.

본문에서 볼 수 있는 것 처럼, 그는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억지로 그에게 지워졌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과 함께 갔던 그는 순간 어떤 생각과 마음이었을까요?

때로는 우리가 늘 100% 자원하여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기 보다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할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다윗이 시편(51편)에 고백한 것 처럼, 우슬초로 정결케 하여 주셔서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들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는 영원한 영광의 길로 우리를 안내할 것입니다.

오늘 시편 51편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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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4일  요한복음 19:38-42

[요]19:38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요]19: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19:40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요]19:41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요]19:42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일찍이 예수님을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는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속죄의 은혜를 경험한 이후로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숨겼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요구하였고, 니고데모 역시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는,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의식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행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두려움 가득했던 그들을 변화시켰던 것 처럼, 남은 사순절의 기간을 오직 주님과 주님의 십자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 각자 안에 일어나야 할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소망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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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5일 마태복음 21장 12-13절

<월요일 - 성전을 청결하게 하심>

[마]21:12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마]21:13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기도하는 집이 아닌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이용하여 성전 안에서 환전과  제물 판매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취한 것입니다. 겉은 깨끗해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의 영적, 도덕적 타락은 매우 심각한 것이어서 회개하고 치유되어야 했지만, 그들은 아직도 자신의 의를 내어버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부정과 부패는 계속해서 본인 뿐만 아니라 거룩하고 단정해야 할 하나님의 성전마저 더럽히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적용점은 무엇일까요? 우리 몸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거룩한 성령의 전입니다. 나의 성전은 어떤 모습입니까?

예배는 드리는 신앙인의 모습은 있을 수 있지만 여전히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어서 늘 소란하고 분주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기도의 영성으로 참된 평강을 누리기보다는, 내면의 죄악으로 인해서 황량한 상태로 남아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봅시다.

거룩하고 단정한 성전이 아닌, 비진리로 혹은 세상의 욕망으로 채워져 영안이 어두워진 부분이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주님, 여전히 부족한 저의 인생을 깨우쳐주시고 오늘 주님앞에 회개하며 정결함을 얻게 하여 주시옵소서. 겸손하신 주님을 본받는 참된 모습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께서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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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6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25장 1-13절

<화요일 – 논쟁의 날 & 비유로 말씀하심>

[마]25: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25: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 본문 ‘열처녀 비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본문말씀일 것입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등은 가져지만 중요하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 중요한 것은 미련한 다섯 처녀들도 혼인 잔치에 초대된 자들이었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잔치에 참여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과거에 내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고 헌신했다 하더라도, 혹은 오늘도 매순간 영적 전쟁의 한복판에 있다 하더라도 깨어 마지막 때를 준비하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변함없는 믿음과 인내로 그날을 소망하며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 전쟁과 질병과 기근의 시대에 우리가 놓여있지만 오늘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님 오심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낙담이나 좌절의 자리에서 내가 나아가야 할 곳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우물쭈물하고 있는 영적인 자리가 있다면 주님 깨어나게 하시고 십자가 아래에서 다시 시작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새롭게 하소서. 주님 오시는 그 날과 그 때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오늘도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가며 준비하는 슬기로운 자들 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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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7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26장 6-13절

<수요일 – 안식의 날 >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연구한 사람들은 수요일은 침묵의 수요일이라고 합니다.

수요일 예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는 명확하게 제시되어 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매우 귀한 향유 옥합을 붓는 한 여인을 소개합니다.

[마]26:6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마]26:7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마]26: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마]26:9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마]26:10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마]26:11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을 향한 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함께 했던 제자들은 화를 내며, 오히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이 더 가치있고 소중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행위는 좋은 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높여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당시 여인이 드린 향유의 값어치는 노동자의 1년치 임금과 비슷한 정도였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은 이 여인은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으로 섬겼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죽으심을 미리 준비하는 여인의 순수한 열정과 사랑.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의미와 이유를 분명히 알고 받아 들였기 때문에 주님께 온전히 헌신을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깨닫고, 주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삶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며 결단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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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8일 묵상 본문 : 예수님의 중보기도, 요한복음 17:1-26

<목요일 – 예비의 날>

1) 이 땅에서 예수님의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요17:4절)

우리의 사명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론 지극히 평범해보이거나, 아무 의미 없어 보일 때에도 우리는 견고하게 하나님의 뜻 위에 믿음의 걸음을 걸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주의 백성을 보존해주시고,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11절).

성령님은 믿는 자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만, 마귀는 분열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엡 4:1-3).

3) 주님은 주의 백성들이 아버지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주시기를 위해서 간구하셨습니다(17절).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올려드린 기도(요 17장)를 묵상하고 기도로 올려드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방향성을 다시한번 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기도하시고 사셨던 삶의 방향성을 기억하며, 마지막 하나님께 올려드린 예수님의 기도와 마음을 헤아려보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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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39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26:47-27:61

<금요일 – 고난의 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사망의 권세에서 건지시려고 자원하여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죄로 인해서 인간이 당해야 할 고난을 주님이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당하신 고난은 영적인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 되어지는 고난입니다. 죄를 용납하실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심판하실 수 밖에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하나님께 버림받은 주님은 제자들의 배신도 경험하는 심적인 고통을 감당하셨습니다. 또한 수치스러움을 경험하셨습니다.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마 26:67)”

그리고 육체의 고난도 경험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글로 다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 고난을 주님은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오늘 잠잠히 마태복음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 갖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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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제 40일,  묵상 본문 : 마태복음 27: 62-66

<토요일 – 침묵의 날>

오늘 성경 본문에는 예수님이 사흘만에 부활하신다는 것을 막아보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마 27:64)"

그 당시에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거나, 혹은 부활을 막아보려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의 구세주, 만왕의 왕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힘을 초월한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 모든 인류의 죄악을 정복하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부활의 주님, 능력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그 능력에 의해서 우리의 죄 역시 정복되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죄가 사라져 간다는 것이 아니라 죄가 있으면서도 그것이 죄로 끝나버리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로 내 죄가 정복되어지고 다스려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힘으로는 죄를 끊어낼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용서하심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십자가 죽음 이후에 곧바로 부활이 아닌, 무덤에 계셨던 사흘의 기간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혹시 나는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우리 몸의 부활 역시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여전히 믿음의 눈이 아닌, 인간의 얕은 차원의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면 부활의 주님, 능력의 주님, 소망의 주님께 회개와 도우심을 위한 기도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 우리의 삶을 영원무궁토록 다스려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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